글.사진 : 루릭 ( http://blog.naver.com/luric , @LuricKR)

*헤드폰의 청음 세트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CD 플레이어 : NAD C 515BEE

DAC : Matrix Mini-i

Toslink 광케이블 : WireWorld Nova 6

RCA 인터케이블 : Van Den Hul The Name

진공관 헤드폰 앰프 : Analog Design Svetlana (Rev.1)

레퍼런스 시리즈에 대한 호기심

청음실을 들락거리며 조금씩 듣는 단계를 지나 제가 처음으로 구입해서 사용해본 그라도 헤드폰은 SR325is였습니다. 시작부터 금속 하우징의 프레스티지 시리즈로 특유의 금속성을 지닌 차가운 고음과 높은 영역이 강조된 저음 타격을 접해온 것입니다. 그 후 지난 번에 빌려 들었던 PS1000, HP1000, 그리고 현재 소유 중인 HF2의 경험까지 겹치면서 또 다른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인클로저 소재가 100퍼센트 나무로 된 레퍼런스 시리즈(RS)는 대체 어떤 소리를 낼 것인가?'

수입사에 연락을 취해 그라도 헤드폰 중 '완전히 나무로 된 물건'을 빌려달라고 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이번에 살펴볼 RS2i는 RS1i의 그림자에 가려져 많은 유저를 확보하고 있지는 않으나 그라도 헤드폰의 레퍼런스 시리즈를 맛보기에는 충분합니다. 이후 RS1i와 스테이트먼트 시리즈인 GS1000i도 1~2주 정도 빌려서 들어볼 예정입니다만, 특정 회사의 제품을 고를 때 무조건 최상급만을 고르는 선택이 좋은 것만은 아님을 RS2i를 3주 넘게 사용해보면서 깨달았습니다. 또한 그라도 헤드폰 중에서도 레퍼런스 시리즈는 더욱 호불호가 극명한 제품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높은 왜율과 화려한 고음으로 재해석되는 소리

Driver Unit : Dynamic (Open Air)

Frequency Response : 14 Hz ~ 28 kHz

Impedance : 32 ohms

SPL 1mW : 98 dB

금속 하우징 또는 금속 + 나무 하우징의 소리와 달리 굉장히 특이한 음색이 처음부터 느껴집니다. 달리 말하면, 무엇인가 꾸며져 있습니다. 특히 고음역이 그렇습니다. 제가 기준점 비슷하게 사용 중인 Audeze LCD-2 (Rev.2)와 비교해볼 때도 그렇지만, 그라도 헤드폰 중에서도 RS2i의 개성으로 볼 수 있는 것이 화려하게 강조된 고음역이라고 봅니다. 결이 곱고 매끈한 느낌을 주며 무척 현란합니다. 착색된 고음으로 사람의 청신경을 홀리는 것은 오디오 테크니카 헤드폰의 특기라고 생각했는데, 그라도 헤드폰에서 이런 느낌을 받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클래식 악곡을 들을 때 바이올린과 비올라, 하프치코드의 음이 유독 화려하게 표현됩니다. 상당히 굵직한 선이 느껴지지만 거칠지 않으며 고품질의 브랜디가 목을 넘어갈 때의 느낌처럼 매끄우면서도 칼칼합니다.

전체 음역의 왜율이 높게 느껴지는군요. 전체적으로 잔향이 아주 많은 소리입니다. 고음의 끈적거리고 광택이 흐르는 색채와 함께 마호가니 목재 인클로저의 울림이 두뇌에 묘한 최면을 걸고 있습니다. 헤드폰에게서 정확하고 면밀한 사운드를 찾고 싶다면 RS2i는 피해가는 게 좋겠습니다. 적어도 이 물건으로 모니터링을 할 일은 없겠다는 뜻입니다.

저음역의 응답 속도가 상당히 느리며 그 울림 또한 끝이 무척 말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좋게 말하면 부드럽고 편안한 저음이고, 나쁘게 말하면 어색하고 왜곡된 저음이 되겠습니다. 저음량은 제 기준치보다는 많은 편이지만 다른 그라도 헤드폰들보다 약간 작은 에어 챔버 때문인지 저음의 덩어리 자체는 그리 크지 않게 느껴집니다. 저음 부스트가 조금 있으나 적당히 귀를 울려주는 정도라서 오히려 화사한 고음역이 부각되는 면도 있습니다. 많은 저음량과 쿵쿵거리는 타격감을 좋아한다면 RS 시리즈보다는 PS 시리즈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고음역의 비중이 상당히 높아서 중음역의 존재감이 약화되는 면도 있습니다. 아마도 측정 데이터에서는 그렇게 나오지 않겠지만 귀로 들을 때는 고음과 저음만 강조된 V자 소리로 들리기 쉽겠군요. 사람의 목소리 중에서도 유독 낮은 고음역이 강조되는 편입니다. 이 특성으로 인해 여성 보컬과 바이올린의 높은 음이 화사하게 꾸며지므로 음악 장르를 선택할 때 참조해두면 좋을 듯 합니다. RS2i는 어쩌면 클래식 악곡을 주로 들으며 특히 소편성 악곡이나 소프라노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헤드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리 전체의 거리가 귀에서 약간 멀게 느껴지며 그만큼 스테이지를 넓게 표현하는 면도 있습니다. 볼륨을 올려도 이 특징은 거의 변하지 않는데, 넓고 개방된 공간을 원한다면 상당히 즐거운 경험이 될 것입니다. 특히 라이브 공연 현장을 녹음한 음반에서 인상적인 현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악기들의 날이 확 세워진 듯한 긴장감을 샤프하게 강조된 고음역이 묘사하고, 무대의 약간 뒷편에서 연주되는 베이스 악기들의 거리감을 특유의 공간감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본래 '성능'보다는 '감성적 측면'이 강한 제품군이 그라도 헤드폰이지만, RS2i는 청자의 취향을 유독 강하게 탈만한 제품입니다. 또한 그라도 헤드폰을 수집하는 이들에게도 도박이 될만한 요소가 많아 보입니다. 그러나 선택의 기준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지금 오디오를 장만하러 나왔다고 칩시다. 우드 인클로저를 쓰는 RS2i는 빈티지 진공관 앰프 또는 LP 플레이어로 봐도 좋겠습니다.(그라도는 사실 헤드폰 보다도 하이엔드 LP 카트리지 제조사라는 사실과도 연관성이...?) 정밀한 사운드는 일찌감치 안드로메다 밖으로 던져버리고, 음악 속에서 지난 추억과 가슴을 꾹꾹 누르는 듯한 감성적 자극을 찾고 싶을 때 선택할 수 있는 헤드폰입니다. 아니, 그냥 바이올린을 하나 장만한다고 생각해도 좋겠습니다. RS2i는 전기 신호를 변환하는 트랜스듀서(Transducer)의 개념에서 벗어나, 녹음된 소리를 자신의 방식으로 연주하는 인스트루먼트(Instrument)에 가까운 물건이었습니다.

*루릭이 들어본 Grado RS2i의 소리는?

해상도 : 높음.

타격감 : 약간 물렁한, 부드럽고 편안한 저음 타격.

공간감 : 넓음.

치찰음 : 강한 편이지만 현란함.

자연스러움 : 고.중음역이 더 부각되는 형태.

고음역 : 선이 굵고 화려하며 끝 울림이 매끄러운 고음.

중음역 : 디테일이 좋으나 위치가 뒤로 약간 밀려난 느낌.

저음역 : 부스트가 적당히 있으며 그라도 헤드폰 중에서는 간결하게 표현되는 저음.

장단점 및 결론

GOOD

해상도가 높고 시원스러운 소리

화려하게 강조되는 고음

전음역에 잔향이 많고 부드러운 음색

그라도 헤드폰 중에서는 저음량이 적당한 편

넓고 개방된 공간을 표현하기에 좋음

여성 보컬, 현악기류에 최적화

소리가 청자의 감성에 호소하는 면이 강함

독특하고 멋진 우드 하우징 디자인

 

BAD

전체적으로 왜율이 높음

중저음의 느린 응답 속도

착색감이 강한 고음역

그라도 헤드폰 중에서는 저음의 덩어리가 작은 편

RS1i와 비교해보면 선택이 어렵다